
유순정의 유연하면서도 원칙 있는 정치적 입장은 그가 여러 차례 정권의 부침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게 한 요인이 되었어요. 그는 성종 말기부터 연산군 대까지 요직을 지내면서 조선의 정치 개혁과 문물 정비에 기여했지만, 연산군의 폭정이 심해지자 이에 저항하는 자세를 취 했어요. 연산군의 폭정을 비판하다가 한때 관직을 내놓기도 했고, 갑자사화 당시에는 많은 사림들이 죽어나가는 가운데 신중한 처신으로 화를 피했지만 그 역시 정치적 중심에서 멀어 졌어요. 이후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그는 다시 중용되어 이조판서와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하였으며, 조정의 중신으로서 조선 정치의 안정과 왕도정치 회복에 기여 했어요. 중종은 유순정의 학식과 덕망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경연에 자주 불러 의견을 청했고, 유순정 또한 경연을 통해 성리학적 정치 이념과 실무적 방안을 조화롭게 제시 했어요.유순정은 학문적으로도 높은 성취를 이루었으며, 성리학에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후학 양성에 힘 썼어요. 그는 조광조, 김정국 등과도 교유하며 사림의 학문 성장을 도왔어요. 고봉 유순정의 학문은 송시열, 이이, 율곡 등 후대 유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친 바 있는데 그의 글과 문장은 명료하고 격조가 높아 후대에 널리 읽히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