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회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정치가이며, 뛰어난 행정 능력과 강직한 성품으로 조선 왕조의 안정을 도모한 인물이에요. 그는 조선 세종에서 성종에 이르기까지 네 왕을 섬기며 여러 차례 요직을 맡아 조정을 이끌었으며 단종 복위 운동 이후 벌어진 사육신 사건과 관련하여 사화의 중심에 있던 인물로 평가 돼요. 본관은 청송이며, 조선 시대 정국의 중심에서 무오사화 이전까지 조정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도움을 주었어요. 그는 청렴하고 결백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개인의 권력보다는 국가의 안정과 질서를 중시 했어요.심회는 1418년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학문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어요. 1435년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여 관리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어요. 이후 예문관 검열, 정자,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홍문관 교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면서 정치적 식견과 언행의 정직함으로 주목 받았어요.세종과 문종 시기를 거치면서 그는 청요직을 두루 맡으며 사림파 인사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했으며, 성균관에서 후진 양성에도 힘 썼어요. 특히 성리학에 깊이 통달한 학자로서 정치와 도덕을 일치시키려는 유교 정치 이념을 실현하려 노력했어요.